설교작업실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기무 2010. 3. 19. 17:25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눅 16:1-13

 

오늘도 주일예배를 위해 귀한 시간과 여러분의 몸과 마음, 또 예물을 들고 성전으로 올라오신 모두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주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승리자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더불어 하나님께 충성하자는 전제 아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인 충성을 가지고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옆엣 사람과 교제하시겠습니다. 저번 주일 보다 훤하십니다. 은혜 받읍시다.

 

톨스토이의 이야기 중에 어느 제화공이 있었는데 그는 늘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어느 날 꿈 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내일 네 집에 가겠다고 하셨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한 번은 거지가 오고 또 한번은 청소부 영감이, 저녁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다. 모두 가난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구두방 할아버지는 불쌍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다. 그날 밤 꿈속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가서 세 번 다 잘 대접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충성에 대해서 적어놓은 글을 잠시 인용합니다.

충성은, 매사에 근면하고 적극적인 마음,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성전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교인의 영혼이 살고 잘 되는 일이라면 자기 재산과 생명까지 버릴 수 있는 마음이라고 그랬더군요.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요. 마음이 복잡해 지지요.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포자기하면서 말씀과 다른 길을 간다면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성도라 할 수 없는 것이겠죠.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나의 힘대로는 갈 수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도우시니 갈 수 있고, 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지도 않구요. 오직 주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좋은만남교회 모든 성도들도 여러분에게 어떠한 육신적인 유익이 있다할지라도 주일 만큼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 봉사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크신 은총을 덧입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들어 갑니다. 오늘 말씀은 다소 까다로운 해석이 요구되는 난해한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때에 많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오늘 말씀인 누가복음 16장 1-13절까지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입니다. 먼저, 비유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니다. 램덤 하우스 대학사전에는 비유의 정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유: 진리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간단하고 풍유적인 이야기." 우리는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상징과, 실제의 상황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유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든지 간에, 그것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비유 안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실 때에 자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고 명상할 수 있도록 영적인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어려운 말을 하신다면, 청중들 중의 어떤 이들은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그 말씀의 내용을 잊어버리게 될 것을 아셨지요. 그리하여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사용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눅 8: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복음도 열정을 가지고 사모하지 않으면 가리워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에 자주 비유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가리우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진리를 진정으로 갈급해하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발견할 때까지 깨닫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주인과 청지기, 또한 빚진 자가 등장합니다. 오늘 말씀은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입니다. 주인은 어떤 부자이고, 그에게는 그의 많은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청지기가 관리를 잘 못해서,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문이 들려서, 주인은 즉각 그를 불러 그를 해고시키고 재산을 회계하라고 명령합니다.

청지기는 맡은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탁을 받은 '고용인'이나 '집사'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단순한 종일 수도 있고, 주인과 정식 고용 계약을 맺은 자일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처럼 청지기들은 맡은 일의 성격상, 재산을 관리하는 동안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 이 청지기도 주인이 맡긴 재산을 관리하면서 허점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재산축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사실이 소문에 났기에 주인이 재산을 허비하고 있음을 분개하면서 당장 해고를 명하게 된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주인과 청지기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 아니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교훈하고자 하셨을 것으로 짐작 하시면 되겠습니다. 재물은 단지 물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이라 생각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2절을 보면 주인이 그를 불러 놓고 말합니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그러자 3절에서 그 청지기는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낯이 부끄럽구나. 4절을 보면 옳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좇겨 나기 전에, 나, 살 방법을 만들어놓아야지.

‘내 돈은 아니지만 빚진 자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어서, 내가 청지기를 그만 두어도 나를 배반하지 못하도록 조치해 놓아야지.’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면 그들이 나를 기쁘게 여길 거야’ 또 5절을 보면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빚을 청산합니다.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묻습니다. 6절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 문서요. 어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7절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합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말하기를 '자, 이것이 당신의 빚 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임의대로 인심을 쓰면서 빚을 탕감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주인이 알면 당장 치도곤을 맞을 짓입니다. 남의 재산으로 자기 맘대로 인심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8절에 보니까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째 이상하지요?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아닙니까? 8절 쯤에서는 불의하게 주인의 재산을 자신의 맘대로 탕감해 주는 장면에서 주인이 떡, 나타나서 ‘이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누구 재산을 니 맘대로 분탕질하느냐’ 하면서 주인이 난리법석을 떨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딴 소리를 합니다.

오히려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를 지혜롭다고까지 합니다. 9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11]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인들 내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 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오늘의 말씀을 대충 훑어 보면 도대체 주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묘연합니다. 결론부분에서 보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로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자, 그럼 가장 난해한 구절인 8절 부터 분석하면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소유를 맡긴 것은 그것을 잘 관리하라고 주신 것인데, 주님의 것을 내 것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주님 것을 내 것처럼 여기니까 불의한 재물이 되는 것이죠.

남의 재산을 제 것처럼 사용한 청지기를 주인이 칭찬한 것은 그의 부정한 행위를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청지기의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먼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청지기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행동"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더욱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처리 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얻을 유익에 대해 먼저 생각합니다. 빠른 판단으로, 수익계산을 맞추어 대처하면서 내게 유익이 있다 싶으면 열정을 가지고 덤빕니다.

때때로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이익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대 관계에 최선을 다하여 어떤 모임에 가담합니다. 그래서 회비를 잘 내고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심을 쓰고, 한턱 쏘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가령 어떤 경제인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국회의원을 돕는 모임을 만들어 그것으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준다고 합시다. 그것은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의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낭비해 가면서 큰 뜻을 이루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지혜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는 것입니다. 각종 친목회나 동창회나 향우회 등을 보십시오.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엄청난 응집력을 보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하는 일을 과시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불의한 행동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로움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모두 청지기입니다. 과연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처럼 나에게 맡겨진 것으로 주님께 빚진 자들을 섬겨 주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청지기는 내 돈이 아니니까 맘껏 빚진 자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도 사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물질을 가지고 우리는 내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 뿐만 아니라 어려움 당하는 자를 돕는데 인색합니다. 내게 있는 재물은 내 것이라고 여기니까요.

 

만일 여러분의 재물이, 여러분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있다면 과연 그 재물을 그처럼 소중히 여기며 인색해 질 수 있을까요? 어느 분은 자신의 재물이 하나님 것이라고 인정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스스로 빚에서 해방될 수 없는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게 나의 재물을 사용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섬겨 주었는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25장 35절 이하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니까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하니까 40절 이하에서 ‘너희가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재화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 생산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궁색한 땅으로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부의 편재현상이 나타나고 이 지구상에는 여전히 굶주리고 아사에 허덕이는 나라가 널려 있습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쪽에는 버리는 것이 태반이고, 없는 곳에서는 곡식알을 줏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의 비만 때문에 다이어트로 들어가는 비용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비용을 채우고도 남습니다.

 

엊그제 마이클 잭슨이 50살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그의 일생은 눅 16:19 이하에 등장하는 호화로이 연락하던 부자와 나사로에 나오는 부자와 같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50년 동안 이 세상의 모든 호화로움을 누렸다고 해서 그의 죽은 이후의 삶이 현실과 같을까요? 여러분은 그의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의외로 길지 않습니다. 언제 주님이 부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준비가 된 상태여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여유부리지 마십시오. 오늘 부르시더라도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1:24을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마이클잭슨의 그 많은 재산, 그가 죽을 때 가지고 갈 생각을 했을까요? 전혀 그와 상관이 없는 재물이 된 것이죠. 우리는 이 세상에 내게 맡겨진 물질이 내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하루빨리 해방되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관리하도록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해진 것입니다.

 

내가 청지기라면 과연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간단하게 내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여러분이 육신의 부모의 생신날이나 어떤 기념일에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는 것과 또는 자녀에게 용돈을 줄 때와 하나님께 드려야 할 헌금의 수준을 스스로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청지기인가 아니면, 내가 물질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는 가는 금방 판가름 납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과 물질 사이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나의 주인은, 나의 사랑은 오직 주님이라고 고백합니까? 아니면 여전히 물질부분에서는 내가 주인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지요.

 

정녕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고백한다면 내 앞에 던져진 모든 문제도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 앞에선 주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을 찾죠?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한 해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진정 나의 주인 되시고 나의 모든 삶의 해결자 되심을 인정하신다면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즉각 내려놓은 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청지기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처신한 그 행동이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도와줄 친구를 만드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주인의 재물로 빚진 자들을 도와주므로 자신은 좋은 친구를 얻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대비책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풀어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한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좋은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청지기가 친구를 얻기 위하여 불의한 재물을 사용했듯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가난하고 헐벗고 목마른 자들에게 사용하는 것은 곧 주님을 위해 쓰는 것이 되느니만큼 훗날에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고 주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말씀하십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씨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는 침례교인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여 유세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교사로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아주 중요한 득표지의 유세를 앞두고 있었는데도 교회 주일학교에 나가, 맡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일을 하였답니다. 그것이 오히려 맡은 일에 충성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신임이 되어 주일날 유세한 것보다 더 많은 득표를 얻는 효과로 당선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를 충성되이 여겨 그에 따른 보상을 주게 됩니다. 마 25:21에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였습니다. 그는 주일학교 교사 일을 충성되이 감당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도 맡겨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참된 재물과, 참된 직분과 사명을 여러분에게 맡기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여기신다면 작은 것에서부터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목적과 계획대로 주님을 높여 드린다면 주님은 참된 것으로 여러분에게 맡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참된 것이라면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물질문제나, 자녀문제나,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를 보시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결론이 나면, 진정으로 재물의 복과 영혼의 복을 주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큰 일을 하도록 돕는다는 것이지요. 세상의 주인들도 충성되고 착실한 사람을 믿고 맡기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때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늘의 재정을 맡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이 맡겨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되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물질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박성철 장로를 아시는지요. 그는 자은이 고향인 분인데 35세에 주님을 영접하여 사업을 하면서도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유명한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많은 교회와 신학교 등이 그의 지원을 받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저희교회 건물 건축시에도 물질로 헌신하였습니다. 경영이념의 첫 번째가 믿음 중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질과 십일조 뿐만 아니라 기업 내에서 예배와 주일성수 등은 철저하게 지키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아이엠에프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속에서도 살아남는 기업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그를 축복해 주셔서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존 록펠러는 여러분이 너무도 들어 귀에 딱지가 앉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귀감이 될 만한 일은 두 번 들어도 들어야 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배웠고 십일조신앙을 철저하게 배움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 청지기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돈을 하나님 섬기는 도구로 알도록 록펠러에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50대가 될 때, 까닭모를 질병으로 죽음에 몰리자 회개하면서,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병고침을 받은 후 새사람이 되어서 자기영광을 위해 살던 삶을 접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게 되지요.

그 후 그는 엄청난 재물의 축복을 받아 98세까지 장수를 누리며 세계 곳곳에 25억 달러의 돈을 쏟아 자선사업을 위해 그의 물질을 사용했던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말 3:1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나의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받으실 분은 받으시면 됩니다. 믿음으로 받으시면 그 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13절을 다 같이 합독하도록 합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너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그 이유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재물을 단순히 돈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취하려는 모든 열망도 이에 속합니다. 그런 열망의 노예가 된 사람은 모든 것을 잃게 될 순간에 우리를 맞아 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예를 이미 들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열망을 멋진 삶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성서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청지기와 같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가 모든 걸 잃을 때 맞아줄 친구 곧 빚진 자에게 마음을 다 하였습니다. 그 친구인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십니다. 그분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요일 2:15-17을 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마지막으로 최춘선 할아버지의 충성된 일생을 여러분에게 들려주면서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몇 년 전에 김우현이란 KBS PD가 제작한 인간극장에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보여 주었답니다. 저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최춘선 할아버지입니다. 그는 30년 넘게 맨발로 다니며 복음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 같은 삶을 살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노인에게 끌린 감독은 그 후로도 그를 우연히 만날 때마다, 때로는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영상에 담게 됩니다. 감독은 최 노인이 열어 보여준 인생여정, 노인의 집에서 만난 부인과의 대화,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 찾아온 자녀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인의 진면목을 밝혀줍니다. 30년 전 최 노인은 경기도 김포에서 목회하던 목사였습니다. 부모로부터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아 집에 자가용을 다섯 대나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김포일대의 모든 땅이 그 분의 것이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 "죽을 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됐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맨발로 다니면서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는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 전철을 다니면서 전도하다, 마침내 82세를 일기로 1호선 전철역 의자에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돈이 생길 때 마다 고아와 헐벗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나눠 주고 입던 옷까지 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지하철 4호선과 1호선 사이에서 김우현 감독과 마지막 헤어지면서 하는 말은 “충성은 열매 가운데 하나요”라는 말을 남기고 아주 먼 곳으로 가듯 차를 타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의 시신은 1호선 전철의자에 앉은 채로 평안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