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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떻게 예배를 인도할 것인가?-2

기무 2007. 2. 11. 13:00
III. 어떻게 예배를 인도할 것인가?(2)


성도들이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데는 우리 목회자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는 없다.

5. 광고

만약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예배 광고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시켜야 한다. 당신이 직접 광고를 할 경우에도 간략하게 요점만 전달해야 한다. 광고가 길어지고 요점이 없으면 결국 광고시간에는 아무도 경청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자, 잊는 광고 시간입니다." "몇 가지 광고를 드리겠습니다." 따위의 어색한 말은 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졸거나 다른 것을 읽거나 옷가지를 만지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광고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말라(중요하지 않은 광고는 아예 게시판을 통해서 알리는 것이 낫다).
광고를 알릴 때 이런 식으로 해보자. "여기 몇 가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찬양을 한 곡 부르기 전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게시판을 이용하라.
교회 내의 계획들 중에 더욱 진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광고를 통해서 성도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
광고시간에 빼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아픈 성도들을 위한 기도요청이다. 어떤 사람들은(수요 기도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는) 교회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이 광고 시간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아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시간은 수요기도회 때라는 것을 성도들로 알게 해야 한다. 수요기도회 시간은, 모든 기도제목을 받고 기도를 나누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인식시켜야 그들이 기도회에 참석할 것이다.
만약 주일 예배 도중이라도 어떤 성도가 갑작스럽게 아프다거나 한다면 그를 위해서 짧고 간략한 기도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짧은 기도도 긴 만큼이나 경청하신다.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성도 중 한 명이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면 주일에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교회에서 항상 언급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은 필요하다.

6. "다양성"은 삶의 한 방편이다.

나는 언제가 장례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교회에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죽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면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죽은 사람은 뚜껑이 반쯤 열린 관 속에 누워 있고, 장례예배는 한창 진행중이다. 관과 그 주위는 꽃들로 장식되어 있고, 가족들은 애도하고 있다. 오르간 반주가 시작되고 운구하는 사람들은 관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가 관을 열어젖히고 일어나더니 죽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장례예배를 인도하던 목사가 뛰어나와서 소리쳤다. "이봐 그러지 말고 계속 누워 있어. 당신 지금 장례식을 방해하고 있잖아!"
수많은 교회들이 의식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교인들은 딱딱하게 정해진 죽은 의식이 진행되는 순서에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시계를 보면서 언제 무엇이 끝날 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여, "예배를 방해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무슨 말인가 하면 예배를 형식적으로 이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다양성은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배는 너무 경박하면 안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형식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성도들이 다 뻔히 알고 있는 순서를 계속 진행하다 보면 결국 교회에는 생명을 가진 자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예배가 항상 송영으로 시작될 필요는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하면 신학적인 논쟁을 하려 들지 모르겠으나 성경에는 그러한 지침이 전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똑같은 송영으로 예배를 시작하면 그것은 당신의 교회가 죽은 교회라는 것을 광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은 그리스도인의 전투에 대한 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함으로 형식주의에 빠진 성도들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찬송이 끝나고 두 번째 찬송을 시작하려 할 때 짧은 광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광고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광고하지 말기 바란다). 첫 번째 찬송과 두 번째 찬송 사이에 기도를 한다면 기도가 끝나고 짧은 몇 마디의 광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조언을 하겠는데, 제발 기도할 때마다 똑같은 "소리"로 기도하지 말라(예를 들면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의 주재이신 …"이라든가 "온 세상"을 이해서 형식적으로 그것도 매번 똑같은 말로 하는 기도 같은 말이다. 기도하기 전에 기도할 것들을 간단히 메모해 두라. 그러나 절대로 "기도문"을 전체 써 가지고 와서 읽지 말라. "죽은 교회들"이나 그렇게 하는 법이다. 기도할 것을 미리 메모해 두었다가 그것을 진솔하게 기도하라(유창하고 거창한 말보다는 진솔한 기도를 듣고 성도들이 더 큰 감명을 받고 동의할 것이다). 설교를 할 때도 준비를 하는데 왜 기도를 할 때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인가? 기도가 설교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라.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반대되지 않는 이상 국가의 명령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며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의 청중이 당신의 기도를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알게 하라. 국가에 닥친 큰 재난도 잊지 말고 기도하라.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위해서 기도해 주라. 성도들은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관심을 그들의 목사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있음을 알 때 더욱 감사할 것이다.
성경이 명령하고 있는 것처럼 권세를 가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도 기도하라 .만약 당신이 낙태나 음란서적이나 TV를 반대한다면 당신의 청중들도 당신의 분명한 입장을 알도록 하라. 모든 문제에 대한 당신의 분명한 입장을 성도들이 알게 하라 당신이 그러한 문제를 기도하면 별 다른 광고가 없어도 청중들은 당신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기도해서 성인 영화관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음란 서적 판매소를 문닫게 만들었다. 우리 교회는 항상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며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 나는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라디오 설교를 통해서도 최대한의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
물론 나는 강단에서 단 한 번도 "플레이보이" 같은 음란서적의 제목을 말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음란 서적"이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그러한 책들의 특정한 제목을 아는 것도 없고 또한 강단이나 설교 중에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설교자들이 그러한 책들과 영화들에 대해서 설교에서 언급함으로 인해서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그러한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그러한 더러운 잡지를 설교 시간에 광고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비록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잡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악영향만 미칠 뿐이다).
나는 그러한 잡지들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철학"을 청중들에게 밝히고 그것에 대해서 경고한다.

7. 방문자를 환영하라.

교회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들을 일어서게 하고 그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에는 사실 조심스러운 편이다. 그들을 일어서게 하고 이름을 부르면 청중들이 그들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본인들은 좀 당황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친숙해지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을 나타낸다. 그들은 이미 목사가 그들을 일으켜 세워서 이름을 대게 하기 전에 충분히 어색해하며 당혹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을 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음 번 집회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방문자 카드를 주고 스스로 작성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회중 전체 앞에서 자신들의 소개를 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방문자 카드를 작성해서 자신들을 알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덜 어색하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방문자 카드는 헌금함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8. 목사들이여, 긍정적이고 낙천적이 되라.

만약 당신이 열렬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당신의 청중들이 그러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청중들이 성별되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죄악의 부정적인 부분을 설교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긍정적이고 기쁘게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사에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기도 하지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 천 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들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도 건재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하늘 나라는 확실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다배 주신다. 성경은 우리의 확실한 토대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신다. 당신이 비관적으로 될 때 이러한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풍성히 열매를 맺는 교회들을 보라. 그런 교회의 목사들은 대부분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운을 내라. "즐거운 마음은 그 자체로 좋은 약이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인도하는 리더로서 우울하거나 비관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힘쓰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라.

9.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당신의 사역 정 중앙에 있게 하라. 물론 시사성이 전혀 없는 설교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중들은 성경적인 설교를 듣기 원한다. 사람들이 단순히 "뉴스"를 듣기 위해서 당신의 교회에 온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강단 아래에 모인 사람들은 굶주린 양이다. 세상에서 벌어진 뉴스를 전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을 먹이라.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기르고 죄를 폭로해야 한다. 그러나 완악한 마음을 쪼개는 동시에 쪼개진 마음을 싸매 줘야 한다. 성도들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고 말씀으로 먹어 주며 치유해 주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설교를 들으러 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을 성경 읽는데 써야 한다.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 그래서 당신의 청중들이 항상 "신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를 수 있게 하라 .청중들은 항상 "성경 말씀"을 들으러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하되 그 말씀이 그들의 삶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전해 주어야 한다.
내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 가장 듣기 좋았고 나를 격려했던 말이 있었다. 그것은 예배가 끝나고 교회의 현관에 서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자매님이 "양들이 배불리 먹고 갑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목자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격려가 되는 말이 있겠는가?
성경 구절들을 암송하라. 그것보다 더 당신의 설교를 축복되게 하는 것은 없다. 그 책(성경)의 사람이 되라. 청중들은 어떤 위대한 신학자나 다른 유명한 목사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거듭난 청중들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알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한해서 당신은 항상 긍정적이 될 수 있다.

10. 몇 가지 추가적인 조언

강단 위에 밝은 조명등을 설치해서 당신이 "빛 가운데서" 설교하는 것을 청중들이 알게 하라(설교자가 어두운 곳에서 설교하면 뒤에 앉은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설교자들은 매우 어두운 곳에서 설교하는데 자고로 빛을 싫어하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설교자가 밝은 빛 가운데서 설교해야만 청중들이 설교자의 얼굴의 표정을 잘 볼 수 있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이 서 있는 강대상보다 찬양대석이나 회중석을 더 밝게 해놓았다. 그러나 설교 시간에는 설교자가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설교자는 설교 도중 설교 원교와 성경을 읽어야 하므로 밝은 조명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교회 전체의 조명도 밝게 하라. 어떤 교회는 수도원이나 카타콤(지하 무덤) 수준의 조명시설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매우 좋다. 그러한 곳에 대한 적당한 성경 구절은 {빛이 있으라.}(창 1:3)이다. 만약 건물 자체가 어둡다면 가능한 한 밝게 할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젖히고 내부의 색을 밝은 색으로 칠하라. 가능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교회 내부를 밝게 하라. 우리는 밝고 깨끗한 하늘나라에 갈 사람들이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께서도 친히 빛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지 말자."
어떤 교회는 강단 위에 조명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데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전기를 아끼려고 그랬다면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아낌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 세상에서 쇼를 하는 사람들도 무대 위에 조명을 켜지 않으면 해고를 당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는가!
예배를 시작했으면 너무 잡다한 순서를 많이 갖지 말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청중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예배가 너무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배가 서커스 쇼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들이나 혹은 하나님께 너무 경솔히 대하지 말라. 설교자로 강단에 선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이자 특권이다. 그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키지 말라.
유머감각을 지니라. 그러나 농담을 위한 농담만을 일삼지는 말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가끔씩은 설교 중간에 다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넣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해서 농담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사람들 앞에서 너무 거룩한 체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서 농담하므로 사람들이 당신을 하나님처럼 떠받들지 않게 하라. 만약 실수를 했다면 솔직히 인정하라.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 웃는 것에 화내지 말라. 그들은 그러한 일을 통해서 당신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른 성도를 비난하는데 강단을 사용하지 말라. 강단을 인격적인 비난을 하는 데에 사용하면 다른 성도들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특정한 성도를 비난하는 일을 삼가라.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러한 일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설교단에서는 특정한 성도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라.
무엇보다도 성실한 사람이 되라. 당신의 양 무리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 무엇보다도 믿음을 굳게 하라. 그래야 사람들이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할 것이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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