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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레마
신약에는 두 개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나는 로고스(logos)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말씀이다. 또 하나는 레마(rhema)인데, 성경에는 말씀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두 단어는 약간 다르다.
로고스는 영원토록 정해진 것이며, 객관적인 것이며, 일반적으로 말하는 말씀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씀이다.
레마는 로고스보다 더 주관적이다. 우리는 신약 몇 군데에서 레마를 사용하여 설명한 곳을 인용할 수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 4:4)
이 말씀은 로고스가 아닌 레마의 말씀이다. 우리가 보통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에는 「로고스」이지 「레마」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우리에게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예)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어느 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이 길에서 차에 치어 상처를 입고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즉시 요한복음을 펴서 읽었다. 우연히 요 11:4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즐거워하며 평안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가 가서 보았을 때에 아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로고스이지 레마가 아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신 말씀은 아닌 것이다.
로고스와 레마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전자는 성경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후자는 즉석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이 말씀은 레마이지 로고스가 아니다. 말씀의 뜻은 반드시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서 말씀하셔야 비로소 사람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 3:16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성경을 읽다가 예전과 다름을 느꼈다. 하나님이 세상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심을 느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들에게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셨음을 느낀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나임을 느낀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멸망치 않고 내가 영생을 얻음을 느낀다.
이것이 레마이며 하나님의 말씀하심인 것이다. 이때에 당신은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구하여야 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면 레마의 말씀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로고스가 없으면 레마가 없다.
하나님의 모든 레마는 로고스에 근거한다. 요 3:16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레마)이 되어야 비로소 당신이 믿을 수 있고 상황도 변하게 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의 로고스가 없었는가? 있었다. 구약의 계명을 유대인은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소용이 없었다. 오직 주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만이 비로소 영이요 생명인 것이다.
레마 만이 비로소 영이요 생명이다.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레마)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막 14:72)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 레마를 상기했던 것이다. 레마는 그가 기억하고 있고 생각해 낼 수 있는 말씀이었다. 베드로는 거짓말을 했지만, 홀연히 레마가 왔으며 주님의 그 한 구절의 말씀이 임했던 것이다. 레마는 주님이 일찍이 하셨던 말씀을 이제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눅 1:38)
이곳의 말씀도 레마이다. 여기는 하나님이 (사 7:14) 예언하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라는 말씀이 아니라 천사가 특별히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 고 한 말씀이다. 마리아가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비로소 능력이 있었고 성취될 수 있었다.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눅 2:29)
이곳의 말씀도 레마 이다. 원래 주 예수님이 아직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시므온에게 있었는데, 그 내용은 네가 주가 세운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날 시므온은 주 예수님을 보았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시므온에게는 주님의 레마가 있었으며, 이것은 성경의 몇 장 몇 절에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날 주님이 시므온에게 말씀하신 어떤 말씀인 것이다.
단지 성경 몇 장 몇 절의 말씀으로는 부족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만이 비로소 유용하다.
레마는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만진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정결케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레마를 추구해야 하며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은 바로 이것을 의지하는 생활이다. 대체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고, 대체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 기독교는 여전히 개인적인 계시의 기독교라는 것이다. 만일 주님이 사람 안에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기독교가 아니고 신약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눅 3:2)
여기에서의 말씀도 역시 레마 이다.
“시므온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5)
여기의 말씀도 주님이 즉석에서 말씀하신 말씀이며 주님이 그 개인에게 하신 말씀이므로 레마이다. 주님이 성경 몇 장 몇 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물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이 마 14:29 말씀을 인하여 바다에 가서 바다 위를 걷는다면 반드시 물에 빠질 것이다.
이는 그것이 주님이 오늘 하신 말씀이 아니라 당시에 하셨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말씀과 지금 하신 말씀은 동일하게 능력을 갖고 있고 결코 변함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에게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가? 이다.
눅 24:8 저희가 예수의 말씀(레마)을 기억하고, 무엇이 레마인가? 레마는 말씀하신 것을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다.
레마는 간단히 말해서 주님이 거듭하시는 말씀이요 살아 있는 말씀이다.
“내가 주의 말씀(레마)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1:16)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는데 주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했고, 주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몸에 임했다. 베드로가 일부러 가서 생각하고 기억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이 다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우리가 줄곧 소중하게 여기는 한 가지 일은, 주님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주님은 성경에서 말씀하실 뿐 아니라, 바울에게 말씀하시고 요한에게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오늘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하심은 멈춘 적이 없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강단에 설 때마다 항상 레마가 있기를 소망한다. 만일 주님이 오늘 말씀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한편의 메시지를 전했는데도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때가 많다. 메시지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것은 주님의 일상적인 말씀이기는 하지만 주님의 레마는 아닌 것이다.
교회 안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바로 살아 있는 말씀이 없이 죽어 있는 말씀만이 있고 직접적인 하나님과의 교통이 부족한 채 사람의 전파만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리 아래 죽어 있으니 얼마나 애석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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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에서 레마로
신약 성경에 로고스는 총 330회, 레마는 총 70회가 나타난다.
헬라어 "로고스(logos)" 또는 "레마(rhema)"를 성경의 번역가들은 쉽게 ‘말씀(word))'으로 번역하고 있다. 영어의 경우 ‘언어(language)’와 ‘말 또는 음(speech)’은 각각 ‘추상적, 심리적 언어’와 ‘구체적, 물리적 언어’로 분명히 구분된다. 그러나 헬라어의 경우 ‘로고스’와 ‘레마’는 각각 ‘논리적, 객관적, 존재론적 언어’와 ‘현상(사건)적, 주관적, 체험론적 언어’로 굳이 구분할 수 있다. 즉, ’로고스‘는 ’논리(logic)‘에 어원을 두며, ’레마‘는 ’직접적인 언급이나 말씀하심(utterance 또는 speaking)‘에 어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하심(Speaking)이 돌에 새겨진 십계명과 같이 글로 새겨져 모든 사람들을 향해 펼쳐져 적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성경(말씀)이라 한다면, ’레마‘는 그 로고스가 생명력을 가지고 개인의 삶 속에서 살아나 직접 말씀하심으로써(Speaking), 이를 듣고 직접 삶에 적용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소유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로고스(written word )’ 즉, 흰 종이 위에 검게 새겨진 문자에 불과한 셈이다. 이는 마치 십계명의 돌판이 귀한 보물로서 유물함에 보관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레마’는 다르다. 사도행전 속의 사도들이나 집사들이 행동하고 있는 모티브가 바로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심(Speaking)의 ’레마‘에 있었던 것처럼, ’성경 속에 있더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더라‘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레마’의 수준은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직접 말씀하시거나, 개인에게 체험되어져서 그 씌어진 성경 말씀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움직이는 데 있는 것이다. 즉, 살아 움직이게 되는 ‘로고스’가 곧 ‘살아있는 말씀(Living Logos=Living Word)'으로서의 ‘레마’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펼쳐든 성경이 ‘--더라’는 객관적 지식 수준의 ‘로고스’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시고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주관적 체험과 행동의 수준 ‘레마’로 높여가야 할 것이다.